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지탱해 온 전통 공예. 그 중에서도 관서 지방은 다채로운 기법과 독특한 미의식을 지닌 공예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경우점은 손으로 그린 섬세한 염색 기술과 화려한 색채가 특징입니다. 사계절의 꽃과 풍경을 모티프로 한 화려한 무늬는 보는 이를 매료시킵니다.
경우점의 기원은, 에도 시대 초기에 교토에서 시작된 염색 기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원이나 기술의 발전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 초기”는 보통 1603년부터 1688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1603년은 이에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유대장군이 되어 에도에 ‘막부’를 개설한 해에요. 1688년은 ‘도쿠가와 쓰네요시’가 돌아가시고, ‘도쿠가와 아쓰노부’가 그 자리를 이어 ‘겐로쿠 개명’을 실시한 해입니다.
이 시대의 특징으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한 무단 정치가 이루어지고, 시민 문화가 발전하여 가부키와 우키요에 같은 새로운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에도 막부의 기반이 다져진 중요한 시기에 경우점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섬유를 염색하는 기술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시대에는 식물이나 흙 등을 염료로 사용하여 대와 목화의 섬유를 염색했습니다. 나라시대에는 대륙으로부터 당사이와 페르시아 새빨 등의 염색 기술이 전래되었고, 귀족 문화의 발전과 함께 화려한 색채의 의복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도시인 문화의 발전과 함께 화려한 무늬의 한복과 허리띠의 염색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자유로운 무늬 표현과 다채로운 색채가 특징적인 염색 기술인 우즈의 발명이 교토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교우점과 함께 그 후 가가우즈, 에도우즈 등의 세 대 우즈가 탄생했습니다.
교우점의 탄생 배경에는 에도 막부의 기반이 다져진 중요한 시대의 문화와 사회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으며, 교우점의 창시자가 아직까지 특정되지 않는 등 다양한 탄생에 관련된 미스테리가 존재합니다. 교우점을 둘러싼 미스터리 연구의 시작입니다.
『경우점의 수수①: 우즈 탄생과 에도 시대의 ‘사치 금지령’과의 관계는?』
에도 시대 초기에는 다양한 염색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특히, 패턴을 사용한 패형 염색이나 누를 사용하여 방염하는 우즈染의 기술은 교우점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염색 기술의 발전 뒤에는, 에도 시대 초기에 막부에 의해 발표된 과도한 사치를 규제한 사치금지령이 깊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치금지령은 무가 계급의 사치를 억제하고 재정난을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의복이나 장식품에서의 금은의 사용이나 호화로운 자수, 고가의 원단 사용 등이 제한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재정난이나 사회 불안 등을 이유로 사치금지령이 여러 차례 발표되었습니다.
사치금지령의 목적은 무가 계급의 사치를 억제하고 재정난을 해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의복이나 장신구에서의 금·은 사용, 호화로운 자수, 고가의 원단 사용 및 판매 등이 제한되었습니다.
사치금지령으로 금·은 사용이나 자수 등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대신 우즈染과 같은 회화적 표현으로 한복을 화려하게 하는 기술이 탄생했습니다.
우즈染은 패형을 사용하지 않고 붓을 사용하여 직접 무늬를 그리기 때문에, 사치금지령에 제한된 자수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우즈染은 다양한 색상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치금지령에 제한된 고가의 원단보다 비교적 저렴한 원단으로도 화려한 한복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사치금지령은 직접적으로 교우점의 탄생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염색 기술의 탄생을 촉진하는 큰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경우점의 수수②: 경우점의 창시자에 관한 미스터리란?』
에도 시대 초기에 교토에서 탄생한 염색 기술인 우즈의 창시자로는 교토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한 선화가인 ‘미야자키 우즈사이’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우즈사이는 교토의 지온인 문앞에 살았던 선화가로, 당시에는 혁신적인 그림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즈사이는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활용한 한복의 염색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우즈染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경우점의 탄생에는 두 가지 염색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는 무로부터 이어진 ‘쯔지가하나染’으로, 패형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붓으로 무늬를 그리는 염색 기술입니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지만, 색이 번지거나 빠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에도 시대 초기에 패형을 사용하여 염료를 누르고 무늬를 염색하는 기술인 ‘차야染’이 탄생했습니다. 이 기술을 통해 색이 번지거나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고, 정교한 무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즈사이는 쯔지가하나染의 자유로운 표현과 차야染의 정교한 기술을 융합하여 독특한 염색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후에 교우점으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즈사이에 관한 자료는 적으며,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많은 미스테리가 남아 있습니다.
우즈染의 창시자로서의 주장에는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으며, 실제로는 여러 명의 장인들이 관여하여 개발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당시의 염색 기술은 분업 체제였으며,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을 담당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야자키 우즈사이는 교우점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독으로 교우점을 창시했다는 주장은 의문이 남습니다. 교우점은 여러 기술과 인물에 의해 창출된, 교토의 전통 공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우점은 에도 시대 초반의 교토에서의 문화와 사회 상황, 미야자키 우즈사이의 독창성, 그리고 기술적 혁신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화려한 무늬와 회화적 표현은 현대에도 많은 애호가들을 매혹시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