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1월 1일(음력 게이오 3년 12월 8일), 고베항은 대외 무역을 위한 개항지로 문을 열었다. 이 개항은 메이지 유신 직전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후 점차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확대해 나갔다. 고베항은 아름다운 항구 풍경과 활기찬 거리 풍경으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그 역사에는 많은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왜 이 땅에 항구가 개설된 것일까? 그 배경에는 정치, 경제, 그리고 사람들의 의도가 복잡하게 얽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이 존재한다. 이번에는 고베항 개항의 수수께끼에 접근하여 그 역사와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에서 고베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고베항과 개항의 수수께끼 ① 왜 고베가 선택되었는가?
첫 번째 수수께끼는 왜 고베가 개항지로 선택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시 이미 경제의 중심지로 번영하고 있던 오사카가 아닌 비교적 작은 항구도시였던 고베가 왜 선택된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지리적 특성과 정치적 사심 양쪽에 있다. 고베는 수심이 깊고 항구가 넓어 대형 선박이 정박하기에 적합했다. 또한 고베항은 파도가 잔잔하고 선박이 정박하기 좋은 자연적 요충지로 알려져 있었다. 방파제가 필요 없어 상업 활동에 적합했다. 반면 오사카는 수심이 얕아 대형 선박의 입항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막부는 외국인의 영향력이 기존 경제 중심지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것을 우려했다. 고베는 오사카에 근접해 있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즉, 외국인의 활동을 제한하면서도 오사카와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유지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있었다.
이 선택에는 외국의 압력과 국내 사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막부의 고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왜 다른 후보지가 아닌 고베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고베항과 개항의 수수께끼 ② 개항이 5년이나 늦어진 진실은?
두 번째 수수께끼는 왜 고베항의 개항이 5년이나 늦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미일수호통상조약에서는 1863년 개항이 약속되어 있었지만, 실제 개항은 1868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5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로는 존왕양요 운동의 고조와 조정의 반대 등 국내 정치적인 배경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5년의 지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5년의 지연 배경에는 국제 정세의 변화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1861~1865)이 발발했고, 영국에서도 인도 대반란(1857~1859)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일본에 대한 서구 열강들의 압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5년 동안 개항이 지연되는 동안 막부는 개항의 영향을 완화하고 국내 체제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베항과 개항의 수수께끼 ③ 원일 개항의 진의는?
세 번째 수수께끼는 왜 고베항이 설날에 개항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보통 새해 첫날에 중요한 정치-외교적 행사를 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1868년 1월 1일이 선택된 것일까?
일설에 따르면 이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의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메이지 신정부는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서양식 달력 채택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1월 1일 개항이 이 새로운 달력 채택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또한 1월 1일은 서양 국가들에게 새해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날을 선택함으로써 서양 국가들에 대한 배려를 보여줬다는 시각도 있다.
“고베항과 개항의 수수께끼 ④ 외국인 거류지의 위치는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네 번째 수수께끼는 외국인 거류지의 위치 선정에 관한 것입니다. 고베 개항 후 외국인 거류지가 설치되었는데, 그 위치는 왜 현재의 위치로 결정된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외국인 거류지는 항구에 가까운 곳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고베의 경우 항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거류지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선택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요?
한 가지 설로는 일본인 사회와 외국인 사회를 분리하여 마찰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미래의 도시 확장을 예상하고 굳이 내륙에 거류지를 설치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고베항의 개항을 둘러싼 이러한 수수께끼는 단순한 역사의 뒷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수수께끼는 당시 일본이 직면한 과제와 정치가들의 의도, 그리고 세계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왜 고베가 선택되었는지, 왜 개항이 늦어졌는지, 왜 설날에 개항했는지, 외국인 거류지는 왜 그 자리에 만들어졌는지. 이러한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고베항의 개항은 일본이 쇄국에서 개국으로, 그리고 근대국가로 가는 길을 걷기 시작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 배후에 있는 다양한 요인과 결정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역사를 더 깊고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고베항 개항의 수수께끼는 지금도 우리에게 역사의 깊이를 가르쳐 주고 있다.